엄청난 메타포가 숨어있거나, 숨은 속 뜻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강박에 빠지도록 만드는 영화였다. 제목인 HOPE는 역설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이러닉한데 이걸 의도한 것이라면 독자를 골탕먹이는 악취미를 가진 영화감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 같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의미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관객이 이 장면을 보고 무엇을 느끼기를 의도했던 것일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애쓰는 마음이 완전한 몰입을 방해했다. 완벽한 서스펜스도, 스릴러도, SF도, 심지어 코미디도 아니다 보니 대체 무엇을 생각하기를 원하는지 의도를 궁금해 하면 궁금해 할 수록 왠지 내가 보이지 않는 감독과의 싸움에서 지고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중반부 고속도로의 추격전 부분에서는 루즈해지면서 약간 지루했다.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머쥐고 모두가 행복해하던 타이밍에 조인성이 비극적인 일을 당하면서 희망을 무참히 꺾어버리는데, 쿠키에서 그것을 한 번 더 뒤집어버리며 예상에 예상을 뒤엎는 관객과의 심리전 요소를 가미했다. 이것도 일종의 제 4의 벽을 넘어선 것이라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장면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작은 시골 마을의 을씨년스러움을 잘 표현해내면서도 SF, 특히 외계인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굉장히 향토적인 배경과 함께 잘 녹여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정민의 명품 연기와 리액션 덕에 어느 정도까지는 액션과 전투 장면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첫 승리를 거두고 경찰서로 돌아가는 장면 이후로 타이트하게 이어져 오던 긴장감과 연출이 힘이 쭉 빠지면서 루즈해졌다고 느꼈다.
코미디라고 보기에는 해학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느꼈는데, 대놓고 몸개그로 웃긴다던지, 풍자적인 요소가 있다던지 하는 식으로 대놓고 웃기려고 노력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연기와 대사를 통해 코미디적 요소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 또한 의도적으로 상당히 절제된 느낌을 받았다. 작중 주인공인 황정민이 다리 밑에서 화살과 활을 매고 있는 이상희를 만난다던지, 괴물인줄 알고 총을 난사한 것이 알고 보니 자신의 동료여서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둘의 티키타카라던지, 실수인지 의도인지 고양이가 앞에 나타나 핸들을 틀어버려 조인성을 처리해버린다던지 하는 상황은 웃음이 난다기 보다 어이없음에 가까운 감정인 것 같다.
언제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었는지를 돌이켜 보면, 괴물의 실체가 드러나고 생김새가 화면에 보여지는 순간부터 긴장이 확 풀렸던 것 같다. 또 초반부를 돌이켜 보면 마치 괴물의 시선에서 주인공 일행을 바라보는 것 같은 동굴 뷰(이러한 구도를 일컫는 명칭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중심 초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이 굉장히 캄캄한, 어두운 안쪽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구도)를 많이 채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것도 괴물, 즉 크리쳐가 나오는 장르에서 클리셰처럼 사용되는 구도라 어떠한 의미를 담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황정민이 괴물을 죽이기 직전 포착한 괴물의 감정 동요와, 황정민의 괴물에 대한 감정이입(외계인 아이를 죽인 사람에 대해 심히 문책하는 부분)을 통해 외계인’적’ 사고를 해봤을 때 그들의 마지막 HOPE가 지구였다던지, 하필 떨어진 곳 근처의 첫 마을의 이름이 호포항이었다던지, 마지막 외계인들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유명한 성경구절이라던지(히 11:1) 하는 요소들은 하고싶은 말이 없다기 보다는 앞서 감독과 관객의 기싸움아닌 기싸움을 논해놓고 이제 와서 말하는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 굳이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
HOPE, 우리 말로 굳이 적확한 단어를 꼽자면 희망은, WILL보다는 약하고 WISH보다는 강한 어감의 모호한 단어이다.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기를 바라는 wish보다도,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슈퍼히어로가 가질 법한 will보다도,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의지에 가까운 단어가 hope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작중 마지막 주인공 일행이 달려가는 장면에서 정호연이 황정민에게 다음 계획을 장황하게 늘어놓을 때, 황정민은 “마음이 좀 이상해” 라며, 무엇을 생각하고 계획할 것이 아닌 그저 앞을 보고 달리기만 하라고 그녀를 재촉한다. 한편 모선의 추락을 바라보는 두 외계인들의 대화 속에서도,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자신의 심장을 꺼내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알 수 도 없는 아들에게 희망을 걸어보는 외계인의 그 결연한 태도가 hope 아닐까. 단순히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라는 차원에서의 평면적 해석으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정말 그걸 의도하고 해당 구절을 인용했을까 라는 의심도 든다. 물론 앞서 작가와 했던 줄다리기때문에 그런 평면적 의도였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hope를 희망보다는 믿음, 혹은 신념에 가깝게 생각하고 해석하는 것이 작가가 의도한 가장 올바른 해석이라고 본다. 동분서주하며 가족을 위해 십시일반 노력하는 가장의 모습과, 뭔가 있어 보이는 보약 밀매상 목사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어서 당연하게 생각되었을 수 있지만, 극 초반부터 황정민은 겁에 질려하고 두려워할지언정 괴물을 피해 도망갈 생각을 하기는 커녕 그저 정체 모를 그 괴물을 직면하고, 해치우기 위해 한결같이 같은 방향으로 달려간다. 단순히 그가 경찰이므로 직업정신이 투철해서, 그의 캐릭터성 때문에, 나아가는 것 만으로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어서 라고 하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할 지도 모른다. 괴물을 죽인다는 목적으로 포장된 HOPE를 향해 그는 쉼없이 달려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파피용 프로젝트가 실패해버린 외계인들도, 마찬가지로.